1898년 황해도 소래교회 교인들이 교회 앞에 모여 있는 모습. 이 교회는 6·25전쟁 중 소실됐다. 국민일보DB우리나라의 첫 자생 교회로 알려진 소래교회는 1883년 황해도 장연군에 세워졌다. 호러스 G 언더우드와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우리나라에 입국하기도 전 생긴 교회로 교회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의 설립연도를 두고 혼란이 많았다. 학계는 물론이고 주요 교단에서도 1883년을 비롯해 1884·1885년 등 다양한 창립연도가 존재해 왔다.
이처럼 설립연도가 다양하게 존재했던 건 교회 설립에 대한 명확한 사료의 부재 때문이다.
한규무 광주대 교수는 지난 11일 줌으로 진행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30회 학술발표회에서 ‘1920~1940년대 소래교회의 창립기념행사’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문제를 자세히 언급했다.
가장 유력한 창립연도는 1883년이다.
근거는 소래교회 마지막 담임목사인 허간 목사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분실 당회록’이다. 교회는 6·25전쟁 중 소실됐다. 소래교회 창립연도가 1883년인 건 여기에 따른 것이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가 이를 기준으로 소래교회 창립연도를 기념하고 있다. 예장합동 황해노회는 1984년 소래교회 복원을 결의했고 1988년 총신대 양지캠퍼스에 복원했다. 반면 예장통합 총회는 이듬해인 1884년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883~1884년 사이에 창립됐을 거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후 소래교회가 1925년과 1934년, 1943년에 각각 40·50·60주년 기념식을 열면서 혼란을 더했다. 기념식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면 소래교회 창립연도는 순서대로 1885년과 1884년, 1883년으로 모두 달라진다.
심지어 1887년 창립설까지 제기됐다.
이날 한 교수의 발표를 논찬한 옥성득 미국 UCLA 교수는 “토착교회론 입장에서는 1885년 8월 첫 주일에 소래 교인들이 정기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를 설립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반면 선교사관으로 본다면 언더우드 선교사가 소래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한 뒤 세례를 준 1887년 10월 30일을 창립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하는 이론에 따라 창립연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창립연도에 관한 연구 외에도 소래교회에 대한 연구주제는 허다하다”면서 “최초의 자생교회에 대한 보다 다양한 연구를 하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서경조의 신도와 전도와 송천교회의 설립역사에 대한 비판적 분석’ ‘캐나다인 독립선교사 매켄지의 의료선교’ ‘소래교회와 동학의 관계 재검토’ ‘해서제일학교의 설립과 발전’ ‘소래교회와 3·1운동’ ‘소래교회 교인들과 지역사회’ ‘구미포 선교사 휴양촌의 조성과 주민과의 갈등’ ‘소래교회와 세브란스의전의 관계’ 등이 새로운 연구 주제”라면서 “어쩌면 영원히 논쟁의 평행선을 달리게 될 창립 시기보다는 차라리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