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북한 기독교 역사 사전’ 편찬 나선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
이만열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올해는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이하 연구소) 전신인 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설립된 지 43년이 되는 해다.
전두환 정권 첫해인 1980년 숙명여대 교수직에서 쫓겨난 이만열 교수가 이듬해 미국을 찾아 발굴하기 시작한 방대한 ‘내한 선교사 자료’ 등을 기반으로 1982년 출범했다.
역사와 신학 연구자 10여명이 이 단체를 만든 데는 한국 기독교(개신교) 100년인 1985년을 앞두고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하자는 뜻이 컸다. 헨리 아펜젤러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1885년 선교를 위해 한국 땅을 밟았는데 한국 기독교는 대체로 이 해를 자신들 역사의 출발로 본다.
연구소는 출범 이후 출판과 학술지 발간, 세미나 등 여러 활동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해왔다. 한국 기독교사 개설서인 ‘한국 기독교의 역사’(전 3권)를 펴냈고 매년 두 권씩 학술지 ‘한국기독교와 역사’도 지금껏 꾸준히 내고 있다. 3년 전엔 내한 선교사 3천여명의 행적을 담은 ‘내한선교사 사전’을 출간했다.
연구소는 올 하반기에 지난 10년 공을 들여온 대작을 선보인다. 바로 ‘북한 기독교 역사 사전’이다. 1945년 해방 전까지 북한 지역의 기독교 교회와 인물, 학교, 병원, 기관, 사건 등을 약 1만2500개 항목으로 정리할 참이다.
이 사전 편찬에 참여하고 있는 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를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그는 87살 고령에도 지난 2년 동안 거의 매주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거리 시위에 참여했다. 원로 교수와 종교인들이 주축인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민사네, 공동대표 김영·박충구) 고문도 맡고 있다.
북한기독교역사사전 편집위는 사전 발간에 앞서 지난해에 따로 사전 항목집을 엮어 공개했다. 인터넷에서 항목을 열람하고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하다면 확실한 근거와 함께 제시해 달라는 공지도 했다. 이 교수는 북한 쪽 연고가 있는 충현교회와 영락교회, 여러 교단 등을 직접 찾아 항목집을 전하고 충실한 사전 발간에 협력해줄 것도 부탁했단다.
이 교수에게 먼저 왜 북한 기독교 역사 사전을 만들려고 했는지 물었다. 사전 집필에는 이 교수 등 약 70명이 참여했고 출간 재원 마련에는 월남 기업인 정림건축과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남북나눔운동이 큰 힘이 되었단다.
“한국 기독교 하면 당연히 북한도 포함합니다. 제가 남북나눔운동에 참여하면서 북한을 다섯 차례 찾았는데요. 교회가 다 사라졌더군요.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정도가 있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록으로라도 북한 교회의 역사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 해방 뒤 북에서 내려온 분들의 자기 (북한) 교회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있어 서둘러 그분들 도움을 얻어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기독교는 미 선교사가 한국에 온 1885년을 출발점으로 보지만, 만주와 북한 지역까지 보면 그 시기가 더 위로 올라간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기독교는 남한보다 북한 쪽에 먼저 전파되었어요. 1882년 임오군란 전후, 흉년으로 혹은 군란에 연루되어 많은 조선인이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가는데요. 1885년 이전에 만주 지역 3만명 동포 중 세례를 받은 이가 수백명이었어요. 장사하러 만주에 갔다가 스코틀랜드 장로회 선교사 존 로스 등에게서 세례를 받았죠. 존 로스는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한국어로 옮기고 5년 뒤엔 ‘예수성교전서’라는 한국어 신약전서까지 출간했어요. 의주 출신 서상륜은 로스의 성경 번역에 직접 참여했고, 만주 동포 김청송은 성경 인쇄를 도운 뒤 성경을 동포에 전하러 직접 나서기도 했죠.”
사전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기독교 단체나 인물, 사건 등의 이야기가 많이 담길 것이라고 했다. “사전 집필진이 ‘기독신보’와 같은 기독교 신문과 잡지, 선교보고서, 회고록 등 관련 자료를 샅샅이 훑어 북한교회의 인물·사건 등의 역사를 정리했어요. 그동안은 평양, 원산 등 도시 쪽 교회와 인물, 사건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연구소는 모두 3천 쪽 분량의 사전을 두권으로 나눠 천질을 찍을 계획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최근 탈북해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무료 기증하려고 후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고향에서 어떤 기독교의 역사가 있었는지 보여주고 싶어서죠. 현재 360질 정도 예약되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신채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해직 뒤 한국 기독교사 연구로 공부의 방향을 돌려 ‘한국 기독교 수용사 연구’, ‘한국기독교 의료사’ 등 여러 관련 저술을 펴냈다.
일제 강점기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예장 고신교단 소속의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가 기독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말 중 하나가 “역사의식을 가져라”이다.
왜일까? “구약은 유대민족의 역사와 예언자들의 이야기인데요. 그게 신탁을 받아 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 자기 시대를 정확히 분석하고, 하나님이 이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어요. 이런 의식이 성서를 지배합니다. 제가 세속의 역사를 공부했으니 이를 기독교와 연결해 보면, 역사는 결국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긴장 관계 속에서 함께 발전해 가는 과정입니다. 성서의 정신도 그래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자유와 평등의 조화는 세계 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올해 43주년 기독교역사연구소
10년 공들여 하반기 출간 예정
3천쪽 분량 1만2500개 항목 담아
‘항목집’ 선 공개해 보완 제보 받아
“기독교 전파, 북한이 남쪽보다 앞서”
고령에도 지난 2년 동안 거의 매주
윤석열 탄핵 촉구 등 거리시위 참여
“목사에게 신적 권위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게 한국 교회 가장 큰 문제”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의 역사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 지도자들은 역사 발전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핵심 기둥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입니다. 세력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의 자유만 생각하지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과의 평등은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민중들이 들고 일어서는 것 아니겠어요.”
오늘날 한국 기독교를 향한 따가운 시선에 대해 언급하자 이 교수는 “기독교인 중에 하나님이 역사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 많다”며 말을 이었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목회자에게 신적인 권위가 부여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학 교육에서 역사의 흐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큽니다. 이런 교육을 받고 목회자가 되면 오히려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그 때문에 한국 교회가 역사 발전의 흐름에 역행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는 한국의 일부 교회가 교인들을 영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목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참 자유가 이뤄지는지, 기독교 진리를 통해 어떻게 자유를 얻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죄에서 해방되면 자유다’는 식의 이야기만 해요. 강압적인 설교를 하고 순종만 강조합니다. 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아요. 서울의 어떤 대형 교회는 군대 이상의 권위적 조직처럼 움직입니다. 이러니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꼼짝을 못 합니다.”
한국 기독교에 대한 그의 또다른 문제의식은 “제대로 된 한국 신학이 없다”는 것이다. 왜 한국 신학이 필요할까?
“신학도 하나의 학문이기에 자기의 경험과 사유에서 나와야 해요. 근데 지금껏 한국 신학은 다 수입 신학입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보면서 그걸 고민하고 성서가 여기에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칼 바르트(독일 신학자)가 무슨 말을 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립니다. 우리 현장에서 여러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별로 없어요. 수입 신학이니까 한국 교회 문제가 나올 때 해결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이 교수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꼼꼼히 기록하는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해직 뒤 미국에 간 1981년부터 지금껏 매일 일기를 쓴다. 요즘은 하루 에이(A)4 석장 분량으로 절반가량은 그날 있었던 일과 자신의 생각 그리고 절반은 주고받은 이메일, 좋은 논설 등 자료로 채운다.
그가 펴낸 에세이집 몇 권에는 자신의 일기에 적힌 인명과 날짜 등 기록을 토대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교유기가 실려 있다. 책을 낼 때 지인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써달라고 청해 말미에 싣기도 한다. 국사편찬위원장 시절엔 국사편찬위원회 기관의 일기인 ‘국편일지’ 작성을 제안해 시행하기도 했다. “나라의 역사를 쓴다는 사람들이 자기 일기를 안 쓰면 안 될 것 같아 의무적으로 쓰도록 했어요. 제가 나온 뒤에는 안 하는 것 같더군요.”
요즈음은 일기에 쓸 내용이 많지 않아 한겨레와 경향신문 사설을 각각 한 꼭지씩 매일 옮겨 쓰고 있단다.
왜 일기냐고 하자 그는 “역사를 공부해 기록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라면서 “몇달이나 몇 년 지나 내가 기억하는 것을 일기를 통해 확인하면 다를 때가 있다”고 했다. “일기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싶지만, 훗날 누군가 신문 사설이 들어간 내 일기를 참고해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또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알게 될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기억 끊기기 전에 ‘해방 전 북한 기독교사’ 복원해야죠”